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되는 것처럼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되는 것처럼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 성광일보
  • 승인 2023.05.03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김정숙 논설위원

소설은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짜여져 있다. 그 에피소드엔 역사 교사였다가 정년 퇴임한 염 여사를 필두로 20대 취준생 알바 시현, 50대 생계형 알바 오 여사, 매일 밤 야외 테이블에서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을 세트로 혼술하는 회사원, 마지막 각오로 청파동에 글을 쓰러 들어 온 작가 인경, 엄마의 편의점을 팔아 치울 기회만 엿보는 염여사의 아들 민식, 민식의 의뢰를 받아 독고의 뒤를 캐는 곽씨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독고라는 남자가 편의점 여사장의 지갑을 찾아준 인연으로 그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면서 시작된다. 덩치가 곰처럼 큰 이 남자는 알콜성 치매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굼떠서 과연 손님을 제대로 상대할 수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의외로 그는 일을 꽤 잘해낼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묘하게 사로잡으면서 편의점의 밤을 지키는 든든한 일꾼이 되어간다. 편의점의 물건을 슬쩍하는 불량학생이나 한밤중의 취객도 제법 잘 다루고, 진상 손님까지 두 손 들고 나가 떨어지게 만든다. 그뿐인가 편의점은 비싸다고 오지 않던 동네 노인들도 독고씨의 싹싹하고도 친절한 태도에 마실 나오듯 편의점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덕분에 오전 매출이 쑥 올라간다.

독고씨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볍게 해 주는 마력이 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시현은 신참 독고씨에게 매장 업무를 교육시키다가 그가 불쑥 건넨 말 한마디에 편의점 교육 유튜브를 시작해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얼마 후 다른 편의점에 스카우트 되기에 이른다. 아들과의 관계로 속을 태우던 오전 알바생 오 여사는 자신의 하소연을 귀담아 들어주고 아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방법까지 알려주는 독고씨에게 큰 감명을 받는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는 세일즈맨 경만은 퇴근길 편의점에서의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혼술이 유일한 낙인데, 언젠가부터 편의점의 밤을 장악한 독고씨가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의 순수한 호의 앞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사장 염 여사가 독고씨를 내 보내고 편의점을 팔게 해서 사업 밑천을 만들려던 민식은 그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돈독한 모자지간이 되고, 민식의 사주로 독고씨의 뒷조사를 하던 흥신소 곽 씨는 타깃인 독고씨에게 오히려 감정이입을 하더니 편의점 알바자리까지 얻게 된다. 대학로를 떠나와 마지막 글쓰기에 분투중인 희곡작가 인경은 서울역 노숙자였던 편의점 알바 독고씨와 매일 밤 취재차 대화를 나누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되찾게 된다.

한편 편의점 일이 숙달 될수록 독고씨는 기억을 조금씩 되찾게 되고 술을 끊으며 지내다 보니 알콜로 굳어진 뇌가 기억을 되찾게 된다. 결국 독고씨는 편의점에서 두 계절을 보내면서 다시 살아내기로 마음 먹는다. 그의 기억이 거의 회복될 무렵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독고씨는 편의점 일을 그만두고 대구로 가기로 결단 내린다. 편의점 매출도 올리며 일 잘하고 있는 독고씨는 왜 알바를 그만두고 대구로 가려는걸까?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지친 삶의 고뇌와 번민으로부터 삶이 가벼워지도록 가교 역할을 했던 독고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끝까지 계속 읽고 싶도록 추리력을 발동시키는 게 독고씨의 정체다. 이것까지 다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강해져서 앞으로 소설을 읽을 독자들이 김 빠질테니까, 여기부턴 안 알랴줌!

The Creative Curve를 쓴 앨런 가넷(Allen Gannett)은 창의적 작품이 성공하려면 당대 관객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그 반향을 일으키는 좋은 소설엔 색다름 이상의 무엇, 즉 친숙성도 필요하다고 하면서 예술가가 대중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의 중요성도 이야기하였다.

작가 김호연은 우리 시대의 친숙하면서도 현대인의 공간이 된 편의점을 배경으로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엮었다.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티격태격하며 별난 관계를 형성해 가는 장면은 마치 드라마를 시리즈로 보는것 같기도 하고 친숙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이 자극적이지 않고 일상적인데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건 사람들은 밤마다 피아노를 치면서 즐거운 나의 집을 노래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모두의 집엔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풀어야 할 숙제가 있어서 그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들이 전 세대를 아울러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