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속에 갇힌 봄을 캐내자
핸드폰 속에 갇힌 봄을 캐내자
  • 이원주 기자
  • 승인 2023.05.18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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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논설위원

네모난 액정 사이로 봄이 슬그머니 왔다 가나 보다. 모시 바지에 바람이 빠지는 것도, 덤불쑥이 들판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어도, 꽃내음이 콧속을 들락거리다 아지랑이 타고 저 멀리 떠나가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선물을 주고자 대문 앞에 서성거리며 초인종을 수십 번 눌러도 꼼짝도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귀찮으니 문 앞에 그냥 놓고 가라는 듯 그저 핸드폰 모니터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 뿐이다. 귀한 선물도, 따뜻한 봄도 그렇게 떠나보내고 있다. 할머니 치맛자락에 실려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 산 너머 바다 너머로...

너른 들판을 두고서 왜 굳이 손바닥보다 좁은 핸드폰 속에 봄을 가두고 있는가. 갈수록 작아지는 눈도 피곤하다고 불평불만이 많다. 쉬어야겠다고 눈을 감으면 눈곱이 덕지덕지 흘러내린다. 액정 속의 아름다운 요정이 아른거려 눈을 감아도 감은 게 아닌가 싶다. 오르랑 내리랑 요동치는 민심의 그래프가 사납게 날뛰지만 무거운 엉덩이는 주춧돌에 눌린 듯 꼼짝달싹 않는다. 지금 당장 지친 눈을 모니터 밖으로 꺼내와 연둣빛 새싹을 보게 하자. 봄꽃을 보게 하자.

눈앞에 도도하게 서 있는 아름다운 꽃을 잠시라도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 오로지 핸드폰 속 정보만이 나의 앞길을 인도해주리라 믿는 사람들, 어렸을 적엔 텔레비전에 빠지면 멍청이가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면 거꾸로 멍청이가 되어버린 세상이 되었다. 내가 너를 찜했는데 감히 네가 어딜 도망가? 구닥다리 핸드폰도 최신식 핸드폰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손에 잡혀있다. 홀딱 벗은 살찐 닭이 살고 싶다 줄행랑을 치지만 몇 발짝 도망가지 못하고 도로 잡혀 오는 형국이다. 손과 눈이 도무지 핸드폰을 놓아주지 않는다. 모니터가 삐죽한 사각 모양이 아닌 아름다운 하트 모양도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쯤 모니터 속의 닭백숙은 내 입맛에 맞게 잘 익어가고 있을까?

눈이 내리다 이슬비로 바뀌어도, 가랑비가 장대비가 되어도 도무지 핸드폰 밖의 세상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밤낮을 잊어버린 채 부릅뜬 눈동자가 빛의 속도로 빠르게 회전한다. 혹여 누가 내 몫에 손을 댈까 철두철미 감시한다. 초점 없는 감시카메라의 촬칵촬칵 소리에 귀만 쫑긋 세운다. 그러면서 모두 빨간 토끼 눈이 되어간다. 핸드폰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 굳게 믿는다.

누가 내 영혼에 빨대를 꽂고 있는가?. 최상의 포식자는 누구인가?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쥔 부유한 노예인가? 넘치는 정보에 굶주린 주인인가? 나의 인생을 통째로 훔치고 있는 너의 정체는 진정 무엇인가?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개발된 좋은 제품들이 더 좋은 신제품의 먹잇감이 되어가는 세상이다. 신제품 나오는 주기가 너무너무 짧다. 나도 그 먹잇감 중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내 일상의 놀이터는 병원의 침상이고, 내 영혼의 놀이터는 핸드폰의 액정이고, 내 육신의 배부름은 약봉지 속의 낟알이라 주장하고 싶은가? 배고파 우는 영혼에 채움 없이 보내버린 하루, 움직임이 텅 빈 하루를 무엇으로 채울까? 꺼림칙한 하루, 나쁜 하루를 무엇으로 씻어낼까?. 헛된 욕심에 눈만 멀어 간다. 액정 사이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에 파묻혀 충혈된 눈동자만이 적막 속의 밤을 깨우고 있다. 덤으로 헛배만 부르고 두툼하게 뱃살만 늘어나고 있다.

내 영혼이 왜 시들어가나 했더니, 메마른 액정이 나의 시간을 모두 빨아가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드라이기에 잘 말려진 머리카락처럼 머릿속도 온통 말라버렸네. 생각도 기억도 추억도 모두 말라 비뚤어지고, 짝짝 금이 간 늙은 소나무 등껍질이 되어버렸다. 핸드폰 속의 정보는 모두 나의 자산은 아닐 것이고, 더구나 나의 벼슬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목소리 크다고, 뱃살 늘어난다고 다 잘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손가락이 빠르면 이긴다는 사실이다.

물고기는 출렁이는 물 위에서 자유로이 유영(遊泳)할 수 있어야 하고, 새들은 막힘없는 창공에서 힘차게 날아야 한다. 푸석푸석한 모래 위에 던져놓으면 어디 힘을 쓸 수 있겠는가. 촘촘한 그물에 가두어 놓으면 어찌 날겠는가. 핸드폰을 품고서 물 위를 자유로이 걸을 수 있다고,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다고 꿈꾸는 사람들, 물고기도 아니고 새도 아니면서 그들을 닮아가려 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고 굳게 믿는가 보다.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자유로운 영혼을 누가 가둘 수 있을까만, 핸드폰 속에 갇힌 내 영혼의 구원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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