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철학자 김천우의 세상 읽기] 9.영혼의 계절 유월, 호국보훈의 달
[감성철학자 김천우의 세상 읽기] 9.영혼의 계절 유월, 호국보훈의 달
  • 성광일보
  • 승인 2023.05.2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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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우
시인, 문학평론가, 작사가
(사)세계문인협회 이사장 / (주)천우미디어그룹 대표이사
월간 『문학세계』 발행인
김천우

사람의 형상을 하고 탄생하여도 이승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순수하고 때 묻지 않는 인간 본연의 자세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아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면서 육신의 변화가 오듯이 영혼의 성숙도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심경이 마음 한구석 똬리를 튼다. 꽃을 꽃이라 부르지 못하고 사랑을 사랑이라 말 못하는 전설의 꽃 상사화처럼 꽃이 필 때마다 홀로 냉가슴 앓듯이 여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영혼의 계절을 맞이하여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다 보니 내가 나를 재조명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우리가 행복에 겨워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각을 세우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경이로운 일들이 발목을 잡는다. 꽃이 필 때까지 과정을 세밀하게 살펴보자. 열매가 존재하는 건강한 나무는 짙은 잎새들과 꽃의 상태를 보면 익히 감지할 수 있다고 본다.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 작가들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사상과 지침서를 살펴보면 어마어마한 고뇌와 기도의 서(書)가 논리정연하게 서술되어 있다. 저마다의 주어진 직분으로 각양각색의 달란트로 세상 바라보는 심안을 밝힌다는 뜻이다. 사람의 인연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진행과정이 얼마나 많은 희비극을 만들며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다녀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라.

사람으로 태어나면 반드시 직면하는 일이니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묵묵히 받아들이며 현재까지 연결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승의 마지막 그날까지 죽을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꽃이 열매를 맺기까지 숱한 비애와 시련을 감당하였기에 결실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꽃의 의미와 희생의 의미, 삶과 죽음의 의미 또한 별반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자연과 대화 속에서 군자의 도가 생성되듯 한세상 살아가는 일 사람답고 선지식인답게 현자의 길 묵묵히 걸어가는 일 또한 녹녹치 않다는 사실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지만 망각의 동물인지라 죽을 듯이 아픈 상처와 지독한 고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쉬이 잊혀지고 기억 속에 지워버리며 현실에 부대끼며 적응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이승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잊어서는 안 될 일도 있다는 사실이 6.25이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4시 통한의 세월, 어찌 피맺힌 그날을 잊으리요. 유월은 민족상잔의 쓰라린 상흔들이 할퀴고 지나간 슬픈 계절이기도 하지만 천 가지 만 가지 꽃이 만발하는 자연의 이치가 얼마나 경이로운가 하는 생각의 화두가 변화무쌍한 시절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숙연한 마음으로 6.25를 상기하며 애환의 시 한 편 소개한다.

무명 영령은 말한다

                           김남조

나는, 가고 싶던 곳 내쳐 못 가고
예 와서 쓸쓸히 누웠느니라
나는, 하고 싶던 말 못내 말하고
기막힌 벙어리로 누웠느니라
포성이 하늘을 뚫는 싸움터
물밀 듯 밀고 밀어 원수를 쫓던 나날
내 나라와 내 겨레를 지켜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 하나 솟구치는 불더미와
다를 바 없어도

칡넝쿨이 휘어 덮인
산골 우물 모양 속
깊이 맑고 맑게 개피던 생각
오가는 총탄 속에서도 잊을 길 없어
눈 앞으게 삼삼히 보고 싶던 얼굴
그 사랑도 나는 두고
예 와서 검은 흙에 묻혔느니라

천지를 쪼개놓듯 치열한 전투에
빗발치듯 오가는 백 천의 포탄
그 하나가 내 가슴을 쏘아 피 흘리던 날
마구 내뿜는 선지피
흥건히 풀에 물들고
못 박히듯 내 생명
그 곳에 멎을 때
서럽디 섦게 감기는 눈자위는
한 줄기 하얀 눈물 흘렸느니라

내가 죽은 후론 이름 모를 전사
이름을 모르매 새길 비문도 없이
차라리 더 조촐한 내 영혼의 모습

하늘 푸르름을
이리도 시원스레 덮고 누워서
내 나라여 내 겨레
내 사람아 편안하라
밤낮으로 빌고 빌며
하세월 이렇게 누웠느니라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해주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잊을 수 없다. 과연 지금 우리들은 그 피멍드는 상흔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고 가슴깊이 되새기고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자신만이라도 유월은 엄숙하게 각인하고자 다짐을 해보곤 한다. 이 한 편의 시에서 우리는 역사를 조금이라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꽃이라 해서 모두 화려하고 아름답고 행복을 전해주는 전령사가 아니라고 본다. 저마다 애환이 있고 슬픔과 분노와 아픔, 그리움과 사랑의 애틋한 발자취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꽃을 꽃으로만 보지 말라는 뜻이며 문학을 향기로만 여기지 말고 내면의 깊고 넓은 뜻글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여야 비로소 꽃이 열매가 되기까지의 의미와 글이 명품이 되기까지 과정을 잘 간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싶은 마음 전하고 싶다.

http://cafe.naver.com/chunwu777(월간 『문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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