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아프지만 기억하는 삶에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상실은 아프지만 기억하는 삶에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성광일보
  • 승인 2023.11.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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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의 아름다운 노래(뷰티풀 라이프)>를 보고
김정숙 논설위원

상실의 아픔과 고통은 상처가 깊어서 환부를 도려내거나 약물을 투여한다고 해서 좀처럼 치료되지 않는다. 특히나 그 상실이 가족인 경우는 더 그러한데 가족 중에서도 어린 시절 부모를 상실하는 사건은 일생일대의 비극을 한꺼번에 다 짊어진 경우라고 하겠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고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초적 집단의 양육자이자 교육자이다. 양육의 환경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자녀는 세상과 만나는 현상과 사물에 대하여 적응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부모로부터 받는 교육은 자녀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현상에 대하여 대응하는 파워를 길러주는 것이다. 가정교육이 학교교육에 우선하여 중요한 이유는 가정은 모든 구성원의 기초적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양육이나 교육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자녀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기능하여야 하고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상담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기능하여야 한다. 그 기능을 위하여 강건한 몸과 마음으로 존재해야 하는 건 부모의 의무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일어나는가? 어떤 부모는 피치 못할 질병으로 어린 자녀와 작별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자녀와 이별하기도 한다.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들에서 그런 운명은 자녀의 성장과정을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양육이 채 마쳐지지 않은 어린 아이는 주거든 교육이든 어떤 환경에서든 여타 건강한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았을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청춘의 꿈을 꾼다는 것도, 욕망을 채우고 싶은 욕구도 저지당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기량을 펼칠 기회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 세상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환경에서의 기회일 뿐, 삶의 운이 제대로 작동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재능을 타고 났어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영화 <우리들의 아름다운 노래(뷰티플 라이프)>는 어린 시절 부모를 상실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살려 낸 주인공을 소재로 했다. 독보적인 음색과 감동적인 ‘떼창'으로 유명한 덴마크 가수 크리스토퍼가 주연인데 주연으로 나온 앨리엇과 그와 사랑에 빠진 릴리도 어린 시절 상실을 경험했다. 앨리엇은 어린 시절 부모가 모두 풍랑으로 세상에서 사라졌고 릴리는 아버지의 자살을 현장에서 목격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가수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스토리는 음악 중심으로 흐른다는 건 안 봐도 콩떡이다. 둘은 모두 대성하는 뮤지션으로 거듭난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고 조금만 힌트를 준다면 여기서 릴리는 음악 프로듀서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상실로 세상살이가 척박했던 앨리엇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대성하는 기회가 있었는지는 두 주인공이 하는 일만 보아도 대충 눈대중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척박한 환경의 앨리엇과 음악 프로듀서 릴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을까? 그건 공감의 영역과 깊이이다. 부모의 상실과 아버지의 상실로부터 받은 아픔과 고통은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다. 부모가 멀쩡히 살아 있는 어린 자녀에게 부모의 상실이 어떤 느낌인지 어떤 고통인지를 설명하는 게 어려운 것처럼 모든 공감은 같은 영역에 있어 봐야 같은 깊이로 느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앨리엇과 릴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같은 상처로 아픈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환부에 관한 그들의 공감과 이해는 그들을 사랑으로 이끌었다. 상처와 환부의 충분한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은 또 다시 과거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내 안의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부모로 나아갈 수 있었다. 상실은 아프지만 기억하는 삶에서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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