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빛 재판(6)
[소설] 달빛 재판(6)
  • 이원주 기자
  • 승인 2023.12.1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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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당
소설가
성동문인협회 소설분과장
김근당 소설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유도 없이 발로 차고 때로는 치마를 들어올리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최정 판사는 울며 집으로 쫓겨 갔지만 어머니나 아버지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러니까 오빠 말을 잘 들어야지 했고, 아버지는 내가 장수를 혼내주어야지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해마다 이천 석의 곡식을 거둔다는 천 읍장 댁이었다. 최정 판사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천 읍장 집 사랑채에 기거했고 아버지는 농사일을, 어머니는 부엌일을 하며 살았었다. 

최정 판사는 천장수에게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서럽게 울면서 다짐했었다. 죽어라고 공부해서 천장수의 위에 올라서겠다고, 그렇게 삶의 목표가 생기고, 목표를 향해 정진할 오기가 생겼었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방청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술렁거린다. 판사가 어떻게 판결할지 지켜보며 자기 생각들을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갯말댁만 억울한 듯 흥분한 얼굴빛이다. 검은 저고리 왼쪽 앞가슴에는 아직도 삼베로 만든 작은 조의 표식을 달고 있다. 막강한 힘을 이용해 살인죄를 덮으려는 천장수를 단죄해 달라는 표식인 것 같다.

최정 판사가 중학교 다닐 때 옆집으로 시집 온 그녀를 동네사람들은 갯말댁이라고 불렀다. 바다 마을에서 시집왔기 때문이었다. 
읍내에서 우연히 김정수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핸드백을 날치기하는 잡범을 김정수 순경이 잡아 주었다는 것이다. 둘은 그것을 계기로 알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성격이 활달한 갯말댁은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공동 우물에서 마을 여자들과 격의 없이 수다를 떨기도 했고 이웃집인 최정 판사의 집에도 자주 왔었다. 어머니가 천 읍장댁 일로 집을 비울 때는 군고구마 등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내려와 보면 여전히 활달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최정 판사는 잠시 흐트러졌던 마음을 수습하고 몸을 꼿꼿이 세워 바로 앉는다. 어떤 경우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판사가 지켜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왔다. 달빛 사건도 그런 정신으로 심리해 왔다. 어머니의 압력도, 갯말댁에 가는 동정심도 떨쳐 버리려 무던히 애썼다.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었다.

“피고인 천장수와 고향에 내려온 이상호 등이 모의하여 9월2일 밤 한 시경 그들의 고향 산기슭에 있는 마한 시대의 미확인 고분을 도굴하여 금장식품 등 보물을 절취하여 오던 중에 현직 경찰인 김정수에게 발각 되자 피고인 천장수가 김정수에게 달려들어 둘이 산 아래로 구르던 중에 몸집이 큰 천장수가 김정수의 가슴을 무릎으로 짓눌러 살해하였습니다. 

또한 이상호의 주장에 마한 시대가 청동기문화 시대라고 하지만 충청도 지역에 자리 잡았던 54개 소국 중 하나인 목지국이라는 집단은 북방계 유민들로 금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고학자인 이상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 동촌마을에서는 신지(큰 나라의 지배자)의 묘가 발굴되는 등 마한 시대의 고분이 다수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촌마을이 고향인 이상호가 미확인 고분을 찾아내었을 것이며 도굴 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근거로 천장수와 김정수가 다툼을 벌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도굴에 사용했던 곡괭이가 발견 되었고 국과수의 감식 결과 그 곡괭이 자루에서 천장수와 이상호의 지문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증인 이말순의 정확한 증언도 형사소송법 제307조 2항(의심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의한 증거가 됩니다. 도굴 전문가 고 박사도 7년 전 이웃 지역 신지의 고분 도굴로 5년 형을 선고받았던 사람으로 이상호 측과 모의하고 도굴을 주도했음이 분명하며 수배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검사는 상기 증거에 의거 피의자 이상호에게 문화제보호법 제92조에 의거 5년의 유기징역을 청구하고, 피고인 천장수는 그에 형법 재250조의 미필적 고의 살인죄를 첨가하여 10년의 유기징역에 처할 것을 요청합니다. 아울러 본 사건의 수사를 계속 진행하여 도굴된 고분과 금장식품들을 찾아내고 고대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 것이니 재판부는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최정 판사는 선고문을 다시 확인한다. 이제 공판 결과를 선고해야 한다. 달빛도 충분히 탐문했다. 그때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온다. 도굴꾼들이 걸어왔다는 산 쪽이 평지처럼 완만한 경사로 뻗어 있어 산길이 멀리까지 보였었다. 그곳에서 걸어왔을 천장수가 보이는 것 같았다. 달빛이 그들이 걸어온 산등성이 너머를 샅샅이 뒤져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예감을 주었던 곳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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