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되는 아름다운 삶이여
시(詩)가 되는 아름다운 삶이여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4.02.07 11: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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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논설위원
송란교 논설위원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도 한 편의 시가 되고, 우울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도 한 편의 시가 된다. 어제의 생각이 오늘 다르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이면 또 다르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시어(詩語) 한 글자를 찾아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자고 나면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은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구매하고픈 마음이 불끈불끈 솟기도 한다. 그러한 일상의 감정이 한 겹 두 겹 포개지면 이엉 이어가듯 굴비 엮이듯 그렇게 웅장한 서사시가 된다. 한 자(字)를 발굴하고 끄적거리다 보면 한 줄 한 줄 쌓인다. 쌓이다 보면 나를 닮은 한 권의 대하소설이 된다. 그렇게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대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는 것이 인생이다.

손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쓴 시도 있을 것이다. 가슴으로 찾아낸 글자로 써야만 울림을 줄 수 있고 세대와 공감하고 시공(時空)을 뛰어넘을 수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귀로는 볼 수 있는 사람도 가슴으로는 쓸 수 있음이다.

즐거우면 즐거운 단어를 우울하면 우울한 단어를 더 많이 캐낸다. 그날그날의 마음 상태에 따라 바구니에 담기는 단어들이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마음가짐이 참 중요하다. 살아서 파닥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면 살아있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기에 곧 시의 영역이 넓어지게 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가슴 속 열정을 모두 태우면서 걷고 뛰어야 함의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한 아름 꽃다발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송이를 찾아내는 수고로움은 즐거움이 아니던가. 해어화(解語花) 한 송이 치켜들 때면 어찌 행복하지 아니하겠는가.

‘잘한다’ ‘사랑한다’ ‘기대한다’라는 말, 어린아이에게는 젖 물림이다. ‘탄핵하라’ ‘퇴진하라’ ‘특검하라’라는 말, 정치꾼들에게는 사탕발림이다. 무지몽매한 정치꾼들이 아는 단어는 그것밖에 없나 보다.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고, 예쁜 구석이 너무너무 많은 사람도 수두룩한 데 왜 하필 보면 볼수록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가? 특별한 것을 별 볼 일 없게 만드는 기술은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국민의 심장에 독화살 쏘는 기술은 언제 배웠을까?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말도 널렸는데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을 왜 저리도 잘할까? 정말 피하고 싶은 부류다.

바람이나 달빛은 주인이 없어서 가는 곳마다 넉넉하고 공평하다. 봄날의 산빛은 밤비 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희끄무레한 얼굴색이 푸르게 돌변한다. 듬성듬성 구름은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도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따뜻한 햇볕을 가로막고 파란 하늘을 가린다. 둥근 달의 푸짐함은 작년과 같건만 인정의 메마름은 예년과 다르더이다.

선 바윗돌 이마가 누운 바위에 구르면, 봄바람은 이룬 것 없이 숨을 헐떡거리며 왔다 갔다 한다. 종달새 따라온 농부님네 마음도 덩달아 바쁘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더 빠르게 걷고 뛰어야 살아남는다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 어디엔들 기어올라야 살아남는다고 아우성이다. 살아가는 길이 참 울퉁불퉁하다.

생각이 쏠리고, 의식이 뭉치고, 사고가 막히면, 내 마음속 빈자리도 좁아진다. ‘오늘이 힘들면 내일은 즐거워야 하리’ 그런 기대라도 있어야 내 육신도 편히 쉬지 않겠는가. 허기진 영혼에 탁주 한잔 부어본다. 진실을 마셨는지 거짓을 마셨는지 혀 꼬부랑은 세월의 허리를 닮아간다. 세월을 사냥하다 허망하게 놓쳐버린 아름다운 표현들이 달리는 차창(車窓) 너머로 즐비하게 걸린다. 고독과 친해져야 하고, 중년 시래기 신세를 면해야 하기에 생각이 또 분주해진다.

남의 추위를 빌려 오는 꽃샘추위도 멀어져간다. 남의 눈물을 빌려 오고, 남의 진실을 빌려 오는 거짓 삶을 이제는 그만 거두어야 하리. 나의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이 환희고, 두 귀로 들을 수 있음이 감사이고, 숨 쉴 수 있음이 행복이다. 함께 살아왔음이 축복이라 노래를 불러야 하리. 눈 감으면 지나간 흔적들이 아름다운 단풍잎처럼 책갈피에 곱게 꽂힌다.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고, 누군가의 추억 속에 곱게 자리 잡고 있기를...

조용한 도랑물 소리가 흔적을 채우며 흐른다. 굴러가는 추억이 졸졸졸. 흘리는 눈물방울이 줄줄줄. 이끼에 미끄러지다 돌돌돌. 바위에 부딪히다 둘둘둘. 앳된 소나무 머리 위로 뜨뜻미지근한 둥근 햇살이 굴러 오른다. 온몸으로 품는다. 인생은 페달을 밟는 순이 아니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먼 길 돌아가는 나의 성공 사다리는 아직도 빈칸이 빼곡하다. ‘인생을 즐겁게 지낼 뿐인데 부귀가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김시습의 <草盛豆苗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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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옥 2024-02-13 10:30:13
구정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송시인님 글 읽으며 기분좋은 한주 시작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주, 파릇파릇 돋아날 봄, 새싹을 기다리며 새록새록 좋은일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도 시인님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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