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세와 서희의 리더십(7)
동북아 정세와 서희의 리더십(7)
  • 서울동북뉴스
  • 승인 2012.07.1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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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길랑<비전경영전략컨설팅 대표>

3.서희의 외교담판
라.서희의 제3차 협상

 
2)담판
양국 대표의 담판이 시작되었다. 소손녕은 "당신 나라는 신라에서 일어났고,고구려의 땅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데 고려가 고구려의 땅을 침식했고,또한 고려는 우리와 접경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와 통교하지 않고 바다 건너 송을 섬기는 고로 출병하게 된 것이니 만일 고려가 영토를 떼어서 거란에 바치고 복속하면 무사할 것이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 서희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곧 고구려의 계승국이다. 그래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으니,만일 경계를 말한다면 거란의 동경(요양)도 우리 영토 안에 들어있는 것을 어찌 잠식이라 하겠는가?

그리고 압록강의 이쪽과 저쪽이 모두 우리의 영역인데 지금 여진이 그 사이에 물래 들어와 살고 있으면서 완고하고 교활하며 변태 간사하여 양국간에 길이 막혀 천자를 알현하는 길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려운지라,이것이 여진 때문인고로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 옛영토를 돌려주어 성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하면 감히 예를 치르지 않겠는가? 장군이 내 말을 천자에게 보고하면 어찌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라고 반박하고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고려사〉에 기록된 서희와 소손녕의 회담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소손녕은 이 회담에서 거병의 목적이 두 가지 임을 밝힌다. 첫째는 옛고구려의 영토가 거란에 속하니 이를 돌려줄 것과 둘째는 송과 단교하고 거란에 복속하라는 것이었다. 거란은 옛 고구려의 영토를 현재 점유하고 있고,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것이니 고구려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희는 고려의 국호와 고구려의 옛 수도인 서경(평양)도읍이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명백한 증거 이므로 거란이 점령하고 있는 요동의 동경도 고려의 영토임을 내세워 상대를 압박한 다음, 현재의 여진이 거주하고 있는 압록강 주변의 땅을 고려에 주면 송과의 관계를 끊고 거란에 복속할 수 있다는 ‘협상안’을 제시한것이다.

3)합의 도출과 축하연
서희와 소손영은 7일간 회담했다. 서희는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말미에 "장군이 내 말을 천자에게 보고하면 어찌 이를 받아 들이지 않겠는가?”라고 하여 회담결과를 최고 정책결정자에게 상신해 확정짓자는 절차상의 제안까지 해 놓은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소손녕은 마침내 서희의 타협안을 거란 성종에게 보고했다.

성종은 "고려가 이미 화의를 청하니 이를 받아들여 마땅히 병을 철군시켜라”고 회신을 보내왔다. 거란측으로서는 고려와 송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려를 복속시키는데 만족했고, 고려로서는 항복 또는 할지의 상황에서 오히려 영토를 확보한 것에 만족할 수 있었다.

회담이 합의에 이르자 소손녕은 서희에게 축하연을 제의했다. 이에 대해 서희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못한 일이 없었지만, 귀 국의 대군이 멀리까지 동원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임금이나 신하 모두가 황급히 무기를 손에 잡고 전쟁터에 나온지가 여러 날이 되었다. 어찌 잔치를 즐기겠는가?”라고 사양하였다.

그러나 소손녕은 "두 나라 대신이 만났는데 어찌 친목하는 예식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굳이 요청하니, 이를 수락하고 매우즐겁게 놀고 잔치를 마쳤다. 서희는 거란의 영에서 7일간 체류하다가 고려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희가 돌아올때 소손녕이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 1000마리와 비단 50필을 예물로 주었다.

4) 협정과 소손녕의 서한
소손녕은 994년 2월, 서희와 합의한 내용을 거란 성종의 재가를 받은 뒤 문서로 작성하여 고려에 전달하였다. “이제 재가를 받았는 바 성종(거란)은 고려와 조속히 화호(和好)하라고 지시하였고 또한 이제 국경이 서로 접하게 되었으므로 소로서 대를 섬기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규범이니 이러한 원리로 출발하여 끝까지 가야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오래 지속될 것이고,만약 이를 베풀지 아니하고 미리 방비하면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중단될 우려가 있으니 고려와 더불어 협의하여 중요지점에 성지(城地)를 만들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성종의 명령에 의거하여 고려가 알아둘 것은 거란은 압록강 서편지역(만주서남지역)에 5성을 쌓는 일이며 이것은 3월 초에 공사를 찰수하게 될 것입니다.

청컨데 대왕(고려성종)은 미리 지휘를 하시어 안북부로 부터 압록강 동편에 이르는 지역 280리에 걸쳐 성을 쌓을 것을 지시하십시오. 그리고 성를 쌓는 공사는 양국이 함께 착수하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거마(車馬)의 길을 터서 고려가 거란에 조공하는 길을 열어 영원히 거란을 받듬으로써 고려는 스스로 편안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5)후속조치
고려는 거란과 통교하고 친선우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994년 압록강 이동 280리 땅에 성구축 작업을 진행했다. 서희는 군대를 이끌고 이 지역 여진족을 축출하는 한편 장흥(長興),귀화 (歸化) 두 진과 곽주(郭州)와 귀주(歸州) 두 곳에 축성했다.

그리고 이듬해(995) 서희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깊숙히 쳐들어가 안의(安義)와 흥화(興化)의 두 진에, 또 이듬해(996)에는 선주(宣州)와 맹주(孟州) 두 곳에 성을 쌓았다. 이로써 서희는 강동 280리에서 여진을 축출한 후 요충지에 8개의 성을 축성하여 단기간에 이 지역 전체를 영토로 확보했다. 이 지역을 흔히 강동 6주라 부른다.

투항론과 할지론이 나무했던 상황에서 서희는 협상을 통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 일방적인 항복을 하지 않는 점, 둘째 북진정책을 유지하면서 강동 280리를 수복한 점, 셋째 전쟁을 피함으로써 백성들의 고통을 줄인 점, 넷째 오늘의 국경선에 기여한 점 등이다. 993년 거란의 소손녕과 외교담판을 했을때 서희 나이는 52세였다.

994년부터 3년동안 수 많은 전투를 하면서 압록강 이동 280리 땅에 8개의 성을 쌓고 강동 6주를 개척하면서 얼마나 노심초사 했던지 병을 얻어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서희는 위대한 전략가요 실천가였으며 국가와 백성을 사랑했던 애국자였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떴을때 임금도 백성도 통곡했던 것이다.

4. 맺음
이상에서 우리나라와 한반도 주변 4대 강국간의 관계, 4대 강국간의 침략과 피침의 역사와 현재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왜 우리나라가 분단국이 되었는가를 되돌아보게 된다.

분단의 초래는 18세기 중반 이후 조선 조정의 무능 때문이었다. 바깥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적 사고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데 있었다. 일찍부터 선진국들과 교류하면서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국가가 되었다면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이 만만하게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1866년 독일 상인 오폐르트와 미국 상선 저너럴셔먼호의 통상요구를 받아들여 교류협력을 강화해 나갔다면 부국강병은 물론, 선진국들이 우리나라가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이고,말과 글을 가진 문화민족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로 부터 "미개한 민족으로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이 필리핀을 갖기 위해 우리나라를 일본이 지배하도록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래서 분단의 일차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한반도는 전쟁이 멈춘 휴전상태에 있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우리가 이긴다며 무력통일을주장하는 전쟁론자들이 있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어느 쪽이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는 초토화되고 우리 민족은 거의 멸족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군사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휴전선 북쪽에 남족을 향해 1만 2천 문의 중장거리 포와 미사일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사시 1분에 1만 발의 포탄이 남쪽으로 날아온다는 것이다. 5일간 만 전쟁을 한다고 치더라도 수 백만 발의 포탄이 날아올 것이다. 남한의 모든 시설이 거의 파괴되고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원자력발전소 21기를 가동하고 있다. 원전이 공격을 당하면 방사능에 의한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방사능 오염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게 된다. 또한 북한은 한·미 연합군의 공격으로 초토화 되고 인명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있다 하더라도 굶어서 죽게될 것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정세가 심상치 않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피폭 이후 남북관계는 얼어붙었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잦아졌다. 이에 뒤질세라 서해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2012.4.24~4.28)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동맹에 버금가는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한·미·일과 불·중·러의 세력 구축을의미한다. 한반도 주변에서 잦은 군사훈련과 이런 세력 구축은 무력충돌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전쟁은 안된다. 외교다. "외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수단이다.” 외교의 힘은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임금과 백성의 신뢰를 받았던 서희 같은 외교의 달인이 필요하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을 상대로 균형·다자 외교로 가야한다. 19세기 유럽의 ‘힘의 균형 괴교’가 아닌 21세기 ‘협력의 균형 외교’로 가야한다. 우리나라는 지리 정치적 측면에서 외교에 실패하면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과 협력의 균형 외교가 살 길이다. 남북한은 평화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주변 4대 강국을 설득해 가면서 평화공존·교류 협력증진을 통해 통일의 길로 가야 한다. 바로 서희와 같은 외교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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