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민국 혹은 해리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치매민국 혹은 해리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 서성원
  • 승인 2020.10.16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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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⑨성수대교 참사 위령탑
성수대교 붕괴 사진,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성수대교 붕괴 사진,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694-82

◆도로명 주소 없는 성수대교 참사 위령탑
택배를 보내거나 우편물을 보낼 때, 우리는 도로명 주소를 씁니다. 도로명 주소가 일반화된 거죠. 그래서 나는 도로명 주소를 알고 싶었습니다. 도로명 주소 안내시스템(정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성수동1가 694-82'를 입력했습니다. 검색결과가 0건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알았습니다. 도로명 주소는 건물에 부여한 주소라는 것을.
건물은 없지만 사람이 거주한다면, 도로명 주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성수동1가 694-82'에는 17명이 삽니다. 성수대교 참사 위령탑이 있는 곳이거든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산다고 해야 옳겠군요. 도로명 주소를 어떻게 만들 수 없을까요. 
'충혼탑'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도로명 주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대구시 남구 앞산순환로 540 충혼탑. 여기는 어떻게 도로명 주소를 부여했을까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은 우리가 기억하고 잘 모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터로 가거나 학교에 공부하러 가다가 죽은 이들은 어떤가요. 재수가 없었던 거지, 지들 운명이었지 뭐야, 이렇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국민 모두를 한강에 빠뜨린 성수대교 붕괴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은 1994년 10월 29일 아침입니다. 기억이 생생합니다. 토막이 난 성수대교, 추락한 상판 위에 찌그러진 차량들, 넘실대는 강물, 하늘에 떠 있는 헬리콥터, 티비 화면으로 보았지만 두려웠습니다. 그 당시 나는 포항에서 살았습니다. '다리가 저렇게 될 수 있구나.'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달랐습니다. 일 년에 두 달 정도 서울에서 지냈으니까요. 다음 해 2월에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성수대교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수대교로 건너야 하는 데 불편을 겪기도 했지요. 재시공해서 97년 8월에 일부 개통을 합니다. 2004년 8차선으로 최종 개통합니다. 살다보니 지금은 매일같이 성수대교를 보면서 지냅니다. 그 다리를 가까이 두고 살게 될 줄은 나도 몰랐죠. 

성수대교 참사 위령탑, 서성원ⓒ
안내문, 서성원ⓒ
희생자명단, 서성원ⓒ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위령탑
성수대교 참사 위령비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위령비는 서울숲에 붙어 있습니다. 서울숲쪽에서 가려고 했더니 철조망이 가로막았습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더니 알 것 같았습니다. 그곳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도보로 안 됩니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차량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인 강변북로로 둘러 쌓인 곳, 섬 아닌 섬이었습니다.

2005년에 금호동 쪽으로 연결하는 진, 출입 램프를 만들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감추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감출 일은 더더욱 아니죠. 그런데 위령탑에 가는 걸 이렇게 어렵게 해놨을까요.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계기로 국가 주요시설물 안전확보를 위해 1995년 4월 19일 한국시설안전공단(안전공단)이 출범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수많은 안전사고들이 이어집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 사망, 대구지하철 폭발 101명 사망, 이천물류센터 화재 40명 사망, 세월호 침몰 295명 사망, 밀양 세종병원 화재 47명 사망, 등등 이보다 작은 사고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왜 이렇게 사고가 반복될까요? 
사고 후에 그 일을 잊어버렸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치매민국에 살고있는 건가요. 천만에 말씀. 

성수대교 붕괴 원인을 짚어보겠습니다. 부족한 기술력으로 무리한 설계, 시공업자와 관계 공무원의 부패, 서울시 공무원의 관리 부실, 붕괴 조짐이 있다는 시민의 신고를 무시한 대처, 등으로 요약됩니다. 이렇게 알잖아요. 그런데 이 성수대교처럼 비슷비슷한 사고들이 이어집니다. 관계자들도 사고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그럼에도 정부나 국민은 해리장애자가 됩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잊지 말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안녕한가
나는 한강 쪽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합니다. 성수대교를 봅니다. 지금은 파랑색이 아니라 주황입니다. 해 질 무렵, 남산 쪽으로 떨어지는 석양과 어우러진 성수대교는 정말 멋집니다. 밤이 되면 조명까지 더해져서 아름답지요. 철재로 만든 성수대교 용접 부위들은 안녕하겠지요? 철강재로 만든 다리는 완공 후에도 용접 부위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답니다. 참, 철재로 만든 다리가 성수대교만 있는 게 아니죠. 

현재의 성수대교
현재의 성수대교  서성원ⓒ

◆성수대교 건설과 붕괴 원인 그리고 위령탑 
성수대교는 한강에 11번째 다리로 건설합니다. 1974년에 착공해서 79년 10월 16일에 완공합니다. 길이 1160m, 4차선 다리. 색상을 파격적으로 하늘색으로 합니다. 그리고 조형미를 주기 위해 게르버 트러스트 형식으로 하지요. 교각 사이도 120m로 해서 멋있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94년 10월 29일 아침 7시 40분경, 상판 50m가 강으로 무너집니다. 시내버스와 승용차가 강으로 추락합니다. 등교하던 무학여고생 8명과 시민 등 32명이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기막힌 일이 밝혀집니다. 다리가 무너지기 전날 밤에 상판에 구멍이 뚫렸다는 신고가 있었답니다. 인명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성수대교 참사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탑을 만듭니다. 사고 3년 만에 위령탑을 세웠습니다. 지금의 위령탑은 서울미래유산입니다. 성동구에서는 성수대교 희생자 위령제를 해마다 열어 떠난이들의 넋과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안전 사고 없는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우리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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