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세이] 가방과 욕심에 대하여
[청년에세이] 가방과 욕심에 대하여
  • 성광일보
  • 승인 2021.07.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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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경/취재부 기자
임태경/취재부 기자

어릴 적 부터 내 가방은 항상 무거웠다. 인정하기 싫지만 꽤 성실한 어린이로 자라나 모범적인 남학생이 될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내 가방은 정말이지 항상 무거웠다. 초등학교 시절,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매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는 깡마른 아이를 발견한 동네 어른들은 내 가방 꽁무니를 들어보시고는 뭐가 들었기에 그렇게 가방을 무겁게 들고다니냐며 그러다 키 안 크겠다 걱정섞인 목소리로 나를 지나쳐 가곤 하셨다. 다행히 지금은 키는 컸다.

그 당시를 되돌이켜보면 필통 수학책 수학익힘책 국어책 슬기로운 생활 바른생활 알림장 연습장. 사물함이 있는데도 나는 주구장창 책들을 다 등하교시에 봇짐지듯 매고다니곤 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학교 공부를 그리 열심히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보습학원은 그땐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고 예습, 복습과는 거리가 먼 학습태도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놓고 부리나케 천국같았던 피아노학원으로 달려갔다. 피아노가 끝나면 다음날 아침에 전화올 윤선생 영어교실에서 준 테이프를 들으며 할당된 페이지를 공부해야했다. 사실 집에 가면 만화영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나마 숙제가 있으면 교과서를 마주하는게 전부였는데, 학교가 끝나면 다른 걸 하느라 정신 없었는데도 나는 부지런히 교과서를 등에 지고 다녔다. 

그 가방은 초등학교 입학생에게는 아무리 봐도 큰 가방이었다. 그래서 그 가방에 온 교과서를 다 넣고 다녔다. 필통은 온갖 색연필과 연필 너댓자루를 꾸역꾸역 채워 무거운 상태가 되어야 가방 속 일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가끔은 집에 들렀다 가지고 가야 할 피아노 책까지 넣고 가녔다. 아이의 걸음으로 20분이 넘는 거리를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다녔는데도 용케 키가 컸다.

그 습관은 중학교때는 책이 아닌 카세트 테이프로, 고등학교 때는 문제집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계속되었다. 그 절정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백팩에 언수외 문제집을, 보조가방을 사서 사회탐구 문제집을 채워 매고 다녔다. 반 1등이었던 친구를 따라하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반전은 우리집은 학교에서 걸으면 10분도 안되고 발코니에서 우리 반 창문이 보일정도의 거리였고, 나는 학교 앞 독서실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얼마든지 밖에 나갔다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혹시 모르니까. 시간이 남으면 필요할 지도 모르잖아'
빈칸을 보는 게 싫어 가방을 채우던 아이는 곧 필요할 때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게 싫어 스스로 짐을 만들고 있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타입도 아니었건만 언수외사 모든 과목의 문제집을 곁에 두어야지만 학습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쓸 데 없는 강박이라고 밖엔, 달리 평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싶다. 

스무살 이후에도, 스무살 중반이 다 된 이 시점에도 내 가방은 여전히 무겁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젠 가벼운 어깨로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거다. 10년 째 절친인 친구 K는 빈손으로 다니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 이라고 몇 해 전 내게 말했다. 그 말에 좀처럼 동감할 수 없었던 나는 문득 어느 날 손에 휴대폰과 카드지갑만 들고 밖을 나서도 전혀 불편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아침에 '혹시 모르니까'를 되뇌며 가방을 채우는 일상을 살고 있다.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느끼는 불안감을 견딜 수 없음에, 감당못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삶이야 말로 내가 가장 무겁게 지고 있는 짐이다. 외출 할 때마다 가방 속을 들여다보며 든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겁냐며 한숨을 쉬지만 쉽지않다. 사실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혹시 모른다는 마음이 아니다. 이미 내 것임에도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욕심이다. 이름까지 써 있어 온전히 내 것 임에도 잃어버리지 않으려 가방을 채우던 어린아이는 17년이 지나도 그리 자라지 않았나보다. 언제쯤 나는 이 가방을 놓을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다. 여러분의 가방은 어떠한가? <practic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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