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하면 어떻게 들리는가?
‘아니’ 하면 어떻게 들리는가?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3.06.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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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논설위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 하면 어떻게 들릴까? 그냥 귀에 들리는 대로 느낌을 표현하자면, ‘~~을 알아?’, ‘~~이 아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가니’는 또한 어떤가? ‘~~을 잘게 갈다’, ‘~~을 떠나가는가?’라고도 들린다. 보지 않고 상황을 알지 못하면 듣고 싶은 대로 들린다. 그러다 보면 벌어진 상황과 정반대로 오해할 수도 있다.

‘처 먹어’, ‘퍼 먹어’ 하는 말을 귀로만 들으면 썩 기분 좋은 상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참기름병을 건네주면서 ‘처 먹어’ 하는 것과 밥솥을 건네며 퍼 먹어‘라 하면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주어나 목적어가 생략된 말은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만 들어서는 이해보다는 오해가 더 잦다. 경험이 쌓아 올린 오해의 늪에 빠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행복하다. 하지만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똑같은 일이어도 느낌은 정반대로 다가온다.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다.

향기 없는 조화(造花)가 흔하니 생생한 생화(生花)가 귀해졌다. 싸구려 거짓이 흔하니 보석 같은 진실은 귀해졌다. 거짓과 속임으로 한바탕 대박을 터트렸다는 소문에 정도와 진실은 꼬리를 감춘다. 세상이 온통 거짓 장막에 갇힌다. 그렇다 해도 진실의 눈은 꼭 뜨고 있어야 한다. 어둠의 길을 안내하는 북두칠성의 국자는 더 밝은 빛을 내기 위해, 반짝이는 은하수를 더 많이 담아내기 위해 더 커져야 한다. 하얀 진주는 검은 시궁창에 묻혀있어도 그 빛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반짝반짝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도 그 즐거움을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눈사람이 자살했다면 뉴스거리가 되는가? 온도가 오르면 눈사람은 점점 쪼그라들고 끝내 사라진다. 먼 나라 기억 속으로 녹아내린다. 눈덩이가 녹으면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모두 드러낸다. 하얀 눈의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한순간에 지저분하고 질퍽한 모습으로 바뀐다.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흉한 것들을 더 많이 보여준다. 눈사람은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왜 그렇게 진실을 감추고 서 있으려 했을까? 누구를 위해 그렇게 발을 꽁꽁 동여매고서 꼿꼿이 서 있으려 했을까? 녹기 전에 세상 사람들에게 하얀 즐거움을 나눠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이 운다 소낙비로, 하늘이 운다 천둥으로... 이렇게 말하면 틀렸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다. ‘여름은 소낙비로 울고 하늘은 천둥으로 운다’라고 해야만 맞는 것일까? 생각이 다른 것을 왜 틀렸다고 말하는 것일까? 정답이 틀린 것을 맞았다고 주장하면 곤란하지만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사회는 더더욱 병든 사회인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말하면 좋다 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면 틀렸다고 윽박지르는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비난하면 미워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좋아하면 그 사람을 미워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좋아해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누구도 좋아해서는 안 된다고 우기는 공통점이 있다.

창작자는 달걀을 낳는 닭이라 말하는 시대인가 보다. 요즘 젊은이들은 창작자의 작품을 보면서 ‘작품 감상’이 아닌 ‘콘텐츠 소비’라 말한다고 한다. 달걀값이 헐값이니 창작자의 길도 과거만큼 매력적이질 못한 듯하다. 그래도 작가의 이름이 곧 자신의 브랜드임은 불변의 진리다. 작가에게는 세상을 향해 작품으로써 진리를 밝히고 어둠을 막아내는 의무이자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진실을 외롭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것이리라.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유는 나에게 돌아오는 이문이 있을까 말까 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조그만 이득에 조급해하다 보면 큰 이익은 별똥별 떨어지듯 한순간에 몽땅 떠나가기도 한다. 황소 눈 만한 포말(泡沫)이 눈 한번 깜박거리면 무지갯빛을 쏟아내며 허공으로 급하게 사라진다. 고깃덩어리를 양손 가득 들고서 또 다른 고기를 탐하려 들면 배고픔에서 헤어나올 수 없고, 혀끝에서 맴도는 침마저 바싹 마를 것이다.

못하는 걸 억지로 잘하려 하지 않고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 한다면 조그마한 행복도 놓칠 리 없다. 마음이 예쁘면 들리는 것도 예쁘고 보이는 것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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